6/ 이별시작 THE ALL YESTERDAY

나얼의 새 앨범이 나왔다. 처음 바람기억을 듣게 된 것은 갑자기 깨어난 새벽이었다. 새벽 한시, 두시쯤 깼던것일까. 그날 하루종일 난리였던 나얼의 바람기억이 들어보고 싶었다. 다행히 참 뻔하게도 나얼 음악이 새벽의 잔잔한 기분을 와장창 깰만큼 무척 소란할 것 같지 않다는 무의식적인 생각도 있었을것이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이니, 나얼이니, 윤건이니 다 크게 관심은 가지 않는데 음악은 계속 듣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믿고 듣는 음악이지만 가수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나얼과 윤건이 함께 작업을 하던 함께 작업을 하지 않던 두 사람은 가치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 결과물도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솔로 앨범을 더 잘 들었던터라 둘의 재결합에 별 생각이 없는데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는 나얼 이번 앨범엔 브라운아이즈 시절의 곡이 없는것같다고 했다. 아쉬울라나, 하고 무심코 생각이 들었었다.

새벽에 듣게 된 바람기억은, 그 느낌이 나지 않아서 결국 반음 높여 부른 버전으로 녹음을 했다는 나얼의 이번 타이틀곡은 사람 마음을 쥐어짜는 힘이 있었다. 그 마음은 버석버석하게 마른 걸레같았다. 쥐어짜는 손이 까슬거려 아프고, 힘이 들어간 팔이 아프고, 흉통으로까지 이어지는 듯한, 어쩌면 이렇게 구체적인 고통. 지금 곡만 따로 듣고 있으면 감흥이 덜한걸 보면 뮤직비디오를 참 잘 찍었다 싶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너무너무 예뻤다. 한없이 행복할것만 같았던 아빠와 아이의 관계,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 라는 구도. 나는 이런 구도에 너무너무 약하다. 물론 나얼이라는 가수의 특징은 이 모든것이 성경과 전도와 연결된다는 것이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잔잔하고 어둡고 깊은 물이 일렁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 그 새벽 내 이불을 둘둘 말고 웅크려 계속계속 똑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조금 울기도 했다. 해야하는 말이 있었는데 물기 없는 걸레에서 뭐 하나 나오는것 없었을것처럼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이제 알고있다. 그렇게 망설이며 마음만 쥐어짜는 동안, 끝이 났다.

그러고 나니 이별시작 이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수영을 하고 나와 젖은 머리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창문을 열고 이 노래를 들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만난 그때부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매달려, 손 끝 하나 다가가지 못하고 마치 무엇에라도 꽁꽁 잡아매인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앓기만 해온 시간에 드디어 홀가분히 지쳤던것일까? 아마 이번에는 정말 끝, 일 것이라고 스스로가 납득하자마자 모든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것이다, 혹은 희망에 괴롭힘을 당하는 종류의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나는 분명 후자에 속하는 인간이다. 내가 가진 희망은 끝없이, 닿을듯 닿을듯 하며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촛불같았다. 그리고 나는 손을 뻗으면 그 촛불에 데일까 촛농이 떨어질까 불이 꺼질까, 혹은 그 불이 이미 꺼져있는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걱정을 하며 손을 뻗지 못하는 인간인것이다. 그러니 그 촛불이 정말로 꺼져버렸을때, 빛을 잃어버린 깊은 상실감과 함께 일종의 안도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아, 불이 꺼져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꺼졌네, 하면서. 내가 끄지 않아도 되는거였네, 이젠 뜨겁지 않겠네, 불 날 걱정은 없겠네, 하면서. 이제는 더이상 전전긍긍하며 보고있지 않아도 되겠네.

왜 나는 스스로 이별을 시작했던걸까.
왜 이렇게 참혹하게, 스스로를 내팽겨치면서.

120925